[다산 칼럼] 시기(猜忌)문화의 만연을 우려한다

입력 2017-01-05 17:48  

97년 이후 악성화된 공멸적 시기심
표만 보는 정치도 기업때리기 골몰
자유시장경제 위협할 정도 아닌가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



러시아 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우화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는 그런 요술 할멈이 러시아 농부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네 소원을 하나만 말해라. 뭐든지 이뤄 주겠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네 이웃이 네가 갖는 것의 배를 받는다.” 한참을 생각한 후 농부가 말했다. “제 눈을 하나 멀게 해 주세요.”

실로 공멸적인 시기심의 발로라고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심은 러시아에만 독특한 것이 결코 아니다. 동유럽과 발칸지역은 물론이고 중국, 중남미에서도 발견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든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속언이 이를 증명한다.

시기심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광범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인류학자 조지 포스터는 전통적 농민공동체에서 형성된 세계관 혹은 인식성향으로 설명한다. 여기서는 모든 ‘좋은 것’은 한정돼 있고 공급은 언제나 부족하다. 이뿐만 아니라 공급을 늘리는 것도 농민들의 능력 밖이다. 폐쇄된 공동체에서 토지와 같은 것은 나누고 또 나눌 뿐 증가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나 가족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손해 위에서만 가능하다. 누가 손해를 보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좋은 것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은 공동체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된다. 누군가가 남보다 잘살게 되면 그것은 근면과 성실 그리고 창의성의 결과가 아니라 협잡과 기만의 결과이거나 외부 세력의 비호와 특혜 때문이라고 간주된다. 깨끗한 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는 당연히 시기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내가 남보다 못사는 것은 남이 꼼수를 쓴 결과이지 내 탓이 아니다.

이런 세계관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와 조응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시장경제는 개인 간의 교환을 그 작동원리로 삼고 있다. 따라서 교환의 전제가 되는 개인 간 차이는 당연하다. 시기심의 문화는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와 친화력을 갖는다. 사회주의의 매력은 인간의 시기심에 의존한다.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계급 없는 사회는 시기심의 원인 자체를 제거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규모 농민층을 가졌던 러시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시기심이라고 해서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조건 하에서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는 태도가 개인의 분발을 통해 성장의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산업화와 더불어 많은 사람에게 폐쇄된 공동체를 벗어나 좋은 것의 물량이 반드시 한정돼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체험할 기회가 주어진 덕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성취에 시기심을 갖기도 했지만 성장연대에는 조만간 작든 크든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당초 가난이 ‘평등하게’ 분배된 탓에 네가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파괴적 시기심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건 더 높이 또 어떤 건 더 빨리 올라가긴 했지만 모든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려가는 것도 있다는 걸 체험하면서 잠시 잦아들었던 전통사회의 시기 문화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객관적 지표로는 중산층의 비중에 큰 변화가 없지만 여론조사에서 이전에는 중산층이라고 하는 사람이 70~80%였는데 이제는 절반이 하층에 속한다고 답하고 있다. ‘수저론’에서 보듯이 내가 잘나가지 못하는 건 전적으로 부모 잘못 만난 탓이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끼리끼리 해 먹은 탓으로 돌린다. 표만 의식하는 정치권 또한 이런 정서에 편승해 기업 때리기에 골몰한다.

이런 문화적 환경에서 자유시장경제가 과연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 새삼 크게 울린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우리 민족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시오.”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경제학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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